[리포트] 안창호의 어린 시절 / 안창호의 어린 시절 1878년 대동강 하류의 도롱섬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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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23-01-26 01: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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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성공은 안유(安裕)라고도 불리우는 고려 말기의 대표적인 학자로 china(중국) 남송(南宋)의 성리학을 우리나라에 처음으로 수입했을 뿐 아니라, 우리나라 서원 설치의 효시가 되었으며, 안중근(安重根) 의사도 순흥 안씨이다. 아버지는 순흥(順興) 안(安)씨의 시조 문성공(文成公) 안향(安珦)의 후예로 안흥국(安興國)이라고 했고, 어머니는 황씨였다.) 도산의 할아버지는 글 잘하고 엄한 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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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포트 안창호의 어린 시절 / 안창호의 어린 시절 1878년 대동강 하류의 도롱섬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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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창호의 어린 시절 1878년 대동강 하류의 도롱섬에서 출생 어릴 때(1...
안창호의 어린 시절 1878년 대동강 하류의 도롱섬에서 출생 어릴 때(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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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창호의 어린 시절𠌦년 대동강 하류의 도롱섬에서 출생 어릴 때(11세) 부친을 여의고 할아버지 밑에서 자라면서 한학을 공부하였며, 총명하고 영리하여 동네 어른들로부터 많은 사랑을 받음 . 도산 안창호는 1878년(고종 15년) 11월 9일 대동강 하류 도롱섬에서 농업에 종사하는 가난한 선비의 셋째아들로 태어났다. 안씨가 대대로 살던 곳은 평양 동촌(東村)으로 대동강 동편 기슭에 있으나 안흥국은 농토를 구하여 동촌에서 대동강 물결을 따라 하류에 있는 도롱섬으로 옮겨가 셋째아들 도산을 낳았다. 예로부터 풍치가 좋기로 소문났을 뿐 아니라 유서깊은 명승고적들이 자리잡고 있는 대동강 연변에서 자라난 도산은 유달리 대자연을 사랑하는 소년이었다고 한다. (평양 남부산면 노남리로 이사하여 서당에 다니며 연상의 선각자 필대은과 교류가 스타트될 무렵, 동네사람 들은 도산을 흔히 `노내미집 셋째` 라고 불렀다. 손자가 말을 잘 안 들을 때면 꿇어앉혀 놓고 엄한 벌로 다스리곤 했다. 동네 할머니 한 분에게 부탁, 할아버지의 마음을 떠 보게 한 것이다. `우리 할아버지를 만나 나를 어디서 보았냐고 물으시거든 오늘 아침에 고모댁에 간다 하며 가더라고 하세요. 그래 보아서...
다. 안씨 가문의 선산이 있는 대동군 남관면 노남리를 속칭 노내미라 했고, 당시 안창호의 집을 `노내미집` 이라고 불렀던 유래다. 평안남도 강서군 초리면 칠리 봉상도 가 그의 출생지이다. 어느 날 40리 밖에 있는 고모집에 놀러 가고 싶었던 소년 안창호는 할아버지에게 꾸지람을 듣지 않기 위해 꾀를 내었다.